[Step into the Garden] 건축가 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에게 들은 메덩골정원의 유일무이한 이야기

왼쪽부터 건축가 마우리시오 페소,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Photo by Ana Crovetto

경기도 양평, 메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골짜기에 메덩골정원이 자리한다. “자신을 극복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라”고 말한 니체의 ‘초인 정신’에 입각해 조성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인문학 정원이다. 두 축이 이곳을 지탱한다. 하나는 내년 봄 오픈하는 한국정원으로, 일제강점기와 산업화를 거치며 잊혀가는 한국식 정원의 명맥을 잇는다. 강진 백운동 별서서원, 경주 솔밭 등 전통적 정경에서 영감받아 민초들의 삶, 선비들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을 구현한 것. 또 다른 하나는 현대정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석가모니의 철학,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문학 등을 녹여낸 인문학의 섬과 20세기 눈부신 성장의 파노라마를 제시하는 한국 현대사 정원으로 이루어질 예정인 이곳은 내년에 공개된다.
특별한 프로젝트를 위해 국내외 유수 조경가와 건축가가 모였다. 스페인 건축가 안톤 가르시아 아브릴과 데보라 메사의 건축사무소 스튜디오 앙상블이 비지터센터를 디자인했고, 이로재 대표 승효상이 안동 병산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곡서원을 설계한 것이 대표적이다. 칠레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적 건축 사무소 페소 본 에릭사우센(Pezo von Ellrichshausen)도 참여했다. 공동 운영자 마우리시오 페소(Mauricio Pezo)와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Sofia von Ellrichshausen)은 예일대학교 객원 교수이자 하버드 GSD 객원 교수, 코넬대학교 AAP 실무 교수, 그리고 메덩골정원이 현재 모습을 갖추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런 두 사람에게 메덩골정원에 담긴 의미를 물었다.

단순하면서도 많은 이미를 함축한 메덩골정원의 브랜드 심벌.
한국정원의 재예당 마당에 놓인 원주암. 빈 공간과 조화를 이뤄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를 상기시킨다.

2023년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페어 파빌리온.
한옥과 사각 연못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청헌 풍경.

메덩골정원 프로젝트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건축물이 가득한데, 자연과 건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두 분의 건축 철학과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페소 2019년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참여 비중이 늘었습니다. 현대정원의 폰드 파빌리온 설계로 시작해 레스토랑, 전체적 그래픽, 주요 동선 등을 고려하는 것까지요. 소피아 좋은 환경에서 식물이 번성하듯 아이디어도 다채롭게 뻗어나갔습니다. 철학 서적을 즐겨 읽는 우리는 칠레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는데, 관심사가 같은 만큼 프로젝트에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특히 하나의 기능과 시대를 초월해 살아 숨 쉬는 정원을 조성한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정원은 산으로 둘러싸인 외진 곳에 있는데, 식물의 소우주 같은 고요하고 조화로운 비경입니다. 이 닫힌 세계에서는 시각적·촉각적·후각적 경험의 향연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페소 이를 위해 정원의 변화하는 특성, 은은한 존재감을 의식하며 작업했습니다. 복잡 미묘한 배치를 고려해 설계된 건축물과 파빌리온은 공간 내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합니다.
메덩골정원의 콘셉트를 구체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압니다. 인문학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운 정원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데, 디벨로프 과정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두 분에게 영감을 준 장소나 서적, 예술 작품 등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소피아 전체적 콘셉트는 정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설립자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중심으로 위대한 사상가의 철학적 교훈을 담기를 원했죠. 그에 따라 메덩골정원 내 모든 요소가 이 비전과 일치하도록 작업했습니다. 우리는 건축이 일종의 지식이며, 인공물과 자연 사이에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너그러움과 느림, 아름다움, 호기심, 노력 등 가치를 이해함으로써 방문객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깊이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페소 메덩골정원의 직접적 모티브가 된 니체, 카잔차키스, 석가모니 등의 가르침 외 특정한 무언가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그간의 경험과 건축·회화·조각·음악·시에 녹아든 아이디어가 모여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브랜드 심벌, 사이니지 등 BI 디자인도 두 분의 몫이었죠. 메꽃을 모티브로 한 브랜드 심벌의 경우 ‘정원’ 없이 ‘메덩골’만 쓰여 있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페소 브랜드 심벌은 포괄적 접근 방식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선명한 의미를 내포하고, 정원을 나타낼 수 있으며, 결혼식과 전시회 등 이곳에서 열릴 다채로운 행사를 아우르는 이름을 제안했죠. 자연적 반원과 인공적 직선을 조합한 로고는 심플하지만 사계절, 낮과 밤, 생명과 죽음, 꽃, 구름, 물방울, 바람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피아 로고는 시각적으로 강렬하면서도 인식하기 쉽게, 동시에 우아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중앙의 십자 모양은 랜드마크 혹은 지리적 좌표를 상징하고요. 사이니지는 부수적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방문객이 식물과 건축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눈에 띄지 않게 디자인한 이유입니다.
먼저 오픈하는 한국정원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페소 한국정원은 고요하고 장엄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습니다. 벽과 지붕, 개울, 골목, 나무, 꽃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배치한 결과물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현재 순간을 넘어 역사와 전통의 위엄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선곡서원은 현대식 건물이지만, 교육과 제례 등 전통 서원의 기능을 갖췄다. 

한국정원을 거닐며 마음이 끌리는 곳이 어디였는지도 궁금합니다. 페소 특정 공간을 선호하지는 않아요. 하나의 공간이 알맞게 느껴지는 건 주변 공간과 이질감 없이 조응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정원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풍부한 경험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년에 선보일 현대정원에는 직접 디자인한 바닥 모자이크가 놓이는 등 두 분의 터치가 한결 짙게 묻어날 예정입니다.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페소 현대정원은 소주제 정원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소주제 정원마다 어울리는 파빌리온이 관람객에게 각기 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세계적 철학자, 작가의 가르침과 연결되며 설명이나 지시가 아닌 보다 직접적 경험을 통해 몸에 와닿는 곳입니다.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페어 파빌리온은 모호한 내·외부 경계로 자유로운 해석을 유도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 파빌리온이 메덩골정원에 영구적으로 설치된다고요. 장소가 옮겨지는 만큼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듯합니다. 소피아 페어 파빌리온은 계곡 건너 언덕에 놓입니다. 멀리서 시각적으로 정원을 연결하기에 규모를 확장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뜻깊은 행사를 위한 사적이고 친밀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고요. 독특한 형태가 각종 행사의 훌륭할 배경이 될 것입니다. 페어 파빌리온에 덮개를 씌워 랜드마크처럼 활용할 계획도 있습니다.
현대정원 내에는 두 분이 설계한 레스토랑이 들어섭니다. 건물 옥상에 여러 기둥을 세운 것 같은 웅장한 디자인이 인상적인데, 어떤 의도를 담았나요? 페소 식사를 위한 공간을 넘어 메덩골정원을 더욱 풍부하게 경험하게 하는 요소를 추가하고자 했습니다. 건물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뉩니다. 첫째는 언덕 경사면에 위치한 야외극장으로 콘서트, 연극 등 행사가 열리거나 간단한 식사도 가능합니다. 둘째는 야외극장 위 정원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매달린 실내 플랫폼입니다. 셋째는 천장 없는 파노라마 테라스로, 전망대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특별한 축하를 위한 장소로 쓰여 오래 기억될 만합니다. 소피아 세 파트는 지상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거대한 기둥에 의해 수직적으로 연결됩니다. 이러한 연속성은 물리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연결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의 사상을 조형 언어로 표현한 현대정원, 한국 고유의 풍경을 재해석한 한국정원은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메덩골정원을 어떻게 즐겨야 할까요? 소피아 별다른 지식 없이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각 정원의 모티브를 얼마나 아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성별이나 나이, 출신,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비슷한 방식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움직이니까요. 페소 과거 철학자들은 자연 및 다른 사람과 연결될 필요성, 그리고 무언가를 그저 바라보는 것을 넘어 가치를 불어넣는 것에 관한 필요성을 고민했죠. 이런 근본적 만남을 끌어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목표입니다. 메덩골정원이 이곳을 방문한 모두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메덩골정원

출처 노블레스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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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덩골정원 - 자연으로 빚은 한국의 시간